겨울 나무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 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 도종환,『부드러운 직선』(창작과비평사, 1998)
두꺼운 옷을 껴 입어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추운 겨울
그 많던 잎 하나 남기지 않고
벌거벗은 몸을 가눈 채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시
도종환의 겨울나무
겨울 나무를 보면
윤제균 감독의 작품 '국제시장'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오버랩된다.
어린 나이에 6.25 전쟁을 겪고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다 겪은 주인공 윤덕수 세대의 아버지들이
잎새 다 떨구고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쓸쓸한 겨울 나무같다.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굳센 겨울 나무같다.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는
텅 빈 가슴의 겨울 나무같다.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느냐”는 주인공 아내의 말처럼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흥남부두에서 손을 놓으며 아버지가 일러주신
“이제 니가 가장이다. 가족을 잘 지켜야 한다.”는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오신 그 인생!
"아버지 내 약속 잘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독백이었지만 가장 큰 소리로 들려 왔다.
그의 가슴속의 말이 가장 큰 울림이 되어 들려왔던
우리 아버지의 세대가 저 겨울 나무 같다.
그 굳셈이
그 강인함이 나를 슬프게 한다.
힘 없는 목소리
쇠약해진 몸뚱이
격동의 세월을 헤치며 살아온 그 힘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버지 내 약속 잘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약속!
가장의 무게!
이 대사 한 마디가 답이 아닐까?
겨울나무 해설을 찾다 우연히 나와 생각이 같은 글이 있어 캡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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