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2. 09:56ㆍ좋은글&좋은시
가을편지·1 / 이해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톡,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가을비
도종환 詩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가 사랑하고
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가을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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