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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쌤의느린여행

[100세 시대 건강 기행] 몽중루의 서해랑길 기행, 제5코스<원문 정류장↔진도 녹진 관광단지>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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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루의 서해랑길 기행, 제5코스<원문 정류장↔진도 녹진 관광단지> 걷기

 

100세 시대! 
몽중루의 건강 기행

열정이 있다면 언제나 청춘이다.  


서해랑길 기행 

제5코스<원문 정류장↔진도 녹진 관광단지> 걷기 

 

 지난 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지리산과 해남군 서해안 길을 찾았다. 1.3.5주 토요일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구간의 지리산 둘레길을 찾아 걷고, 2. 4주 토요일은 해남 땅끝항을 시작으로 서해랑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트레일에는 곳곳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배어 있었다.  구례와 하동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백의종군길과 명량해전 전승지가 그것이다.  백의종군길은 1597년 4월 1일 옥에서 풀려난 이순신 장군이 4월 3일 한양에서 백의종군에 올라 아산. 공주. 전주. 남원. 구례(구례~순천은 왕복). 하동. 단성을 거쳐 6월 4일 합천군 초계에 이른 길이다.  당시 장군은 그렇게 두 달을 걸어서 권율 장군 휘하로 종군했었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구례 석주관에서 산동에 이르는  장군의 백의종군길을 걸었고, 같은 기간 해남에서는 어란진에서 명량에 이르는 해안을 바라보며 서해랑길을 걸었다.  어란진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7월 23일, 다시 삼도 통사(三道統使)가 된 장군이 바삐 수군을 정비해 9월 16일 명량에서 대첩을 거둘 때 왜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5, 6월 두 달동안 토요일마다 충무공의 기운을 흠향(歆饗)한 셈이다. 지난 토요일 서해랑길 제5코스를 다녀왔다. 해남군 문내면 옥매산 앞 원문 마을에서 울돌목 우수영관광지를 거쳐 진도 녹진 관광단지에 이르는 트레일이다.

        

문내면 용암리 원문 마을을 지나는 명량로에 서면 옥매산이 우뚝 눈길을 끌어 간다.  해남 문내면은 해남반도 안의 또 다른 작은 화원반도(花原半島)가 시작되는 곳이다.  화원반도는 해남 서부에 위치한  문내,  황산, 산이, 화원면으로 구성된 작은 반도로 북쪽은 깃대봉이, 남단은 명량(울돌목)이 자리한다. 이 산은 일제 강점기에 명반석을 채굴해 수탈해간 옥매광산으로 유명한 산이다.  당시 이곳 광부들은 다시 제주도로 끌려가 해군 진지 공사를 하다가 해방을 맞자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배가 침몰해 1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해 더욱 유명해졌었다. 원문 버스 정류장을 시작해  석교리 송정 마을, 선두리 장포 마을, 학동리를 잇는 트레일을 따라  진도 벽파진(碧波津)을 바라보며 명량(鳴梁)을 찾았다. 해안 길을 벗어난 이 구간은 옥매산을 두고 내륙으로 한 바퀴 돌아 걷는 길로 특별한 볼거 리가 없는 들길이다.

 

명량해협엔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가 날렵하고, 그 위에는 해상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해남쪽 화원리에는 우수영 관광지가, 진도 쪽 녹진에는 녹진 관광단지가 마주해 보며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이곳 명량은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右水營)이 있었던 곳, 울돌목은 밀물 때 남해의 바닷물이 서해로 빠르게 빠져나가며 조류가 급류를 이루는데 이때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내는 물소리가 크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명량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우수영 관광지 아래에는 이순신 장군상이 명량 앞바다를 지키고 서 있었다. 우수영 관광지를 두루 돌아보고 녹진을 향해 진도대교를 건넜다. 진도대교는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다. 명량해협 한 중앙, 그러니까 진도대교 중간에 서서 난간을 잡고 남해 쪽을 바라보며 명량해전도(鳴梁海戰圖)를 그려 보았다.1597년 9월 16일,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150여 척의 왜군 전선을 맞던 이순신 장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해 초 2월, 왜장 고니시의 간계에 속은 조정(朝廷)은 이순신을 파직시켜 한양으로 압송하고 선조는 처형(處形)까지 전교했다.  장군의 목숨이 풍전등화 같은 때, 원로 대신 정탁(鄭琢. 1526~1615)의 구명 상소로 겨우 풀려나 두 달에 걸친 백의종군을 했다.  당시 장군은 모친  상중이었다.  다시 복직 교서를 받은 지 겨우 두 달,  그러나 장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몰한 수군을 다시 수습해 그렇게분연히 일어서서 명량에 섰다. 진도 벽파진에서 기다리던 장군은 어란진을 출발한 왜군이 가까이 다가 오자 우수영으로 진영을 옮기고, 여러 장수들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 것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 라고 했다.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거듭했다. 유명한 경구 "必死即生, 必生即死" 이 바로 그것이다.그리고 물리쳤다.  필사즉생(必死即生),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은 명량대첩이었다. 그가 옳았다.  폭 300여 m,  길이1.5km에 이르는 해협엔  서해에서 남해로 흐르는 해류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425년 전 그날처럼.  

  

                                                                                                                                            촬영, 2022,06,25.

 

 

     ▼ 해남 문내면 용암리 명량로 '원문 마을 버스정류장' 앞 삼거리, 제5코스 시종점

 

 

   ▼ 서행랑길 제5코스 지도

 

 

   ▼ 용암리 공룡대로 동쪽 농로길

 

 

   ▼ 문내면 석교리, 독서산 앞 송정 마을 가는 길

 

 

    ▼ 석교산 앞에서 본 옥매산(옥동리)

 

 

   ▼ 석교리 송정 마을 동구 수확 끝낸 양배추 밭 

 

 

   ▼ 석교리 송정마을 회관

 

 

   ▼ 송정 마을 고개에서 본 우수영 쪽

 

 

 

 

 

   ▼ 귀리 밭

 

 

   ▼ 문내면 용암리 들녘

 

 

 

 

 

   ▼ 실내 염소 농장 

 

 

 

 

 

   ▼ 문내면 선두리, 폐농가

 

 

   ▼ 선두리 장포 마을 회관

 

 

   ▼ 선두리 장포 마을

 

 

   ▼ 잎담배 밭

 

 

   ▼ 문내면 학동리 마을 회관 쉼터

 

 

   ▼ 학동리

 

 

   ▼ 학동리 언덕에서 본 삼정 마을 동구

 

 

   ▼ 삼정 마을과 멀리 옥매산

 

 

   ▼ 학동리 야산 길

 

 

   ▼ 청미래덩굴

 

 

 

   ▼ 엉겅퀴

 

   ▼ 금송 육묘장

 

 

   ▼ 명량해협 해안 데크 길

 

 

   ▼ 진도 벽파진 쪽 조망

 

 

   ▼ 명량해협 방문 인증

 

 

   ▼ 명량 해협 데크

 

 

   ▼ 명량해협과 진도 대교 - 1

 

 

   ▼  명량해협과 진도 대교 - 2

 

 

   ▼ 울돌목(명량해협)을 지키는 충무공 상

 

 

   ▼ 우수영 관광지의 명량대첩 탑

 

 

   ▼ 쇠사슬 감기 틀

 

 

 

▼ 해남 출신 정유재란 구국 공신 충혼비

 

 

   ▼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 전시관 - 1

 

 

   ▼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 전시관 -  2

 

 

   ▼ 명량해전 재현도 - 1

 

 

     ▼ 명량해전 재현도 - 2

 

 

   ▼ 충무공 이순신 진영

 

 

   ▼ 거북선 모형 

 

 

   ▼ 해남과 진도를 잇는 '명량 해상 케이블카'

 

 

   ▼ 우수영 관광지 방문 기념

 

 

   ▼ 우수영 관광지 방문 기념

 

 

   ▼ 명량해협 우수영 관광지

 

 

  ▼ 울돌목 스카이워크

 

   ▼ 명량해협 수로

 

 

   ▼ 진도 녹진 관광단지

 

 

   ▼ 진도 대교에서 본 울돌목과 해남 우수영 관광지

 

 

   ▼ 명량대첩 해전도

 

 

   ▼ 해남 서상리 우수영과 황원곶(黃原串)

 

 

   ▼ 진도 녹진 관광단지와 진도 시티투어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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